애쓰지 않고 우아하게 부를 끌어당기다: 마크 앨런 '백만장자의 명상법'
✔ 오늘의 핵심 주제 요약
-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각, 감정, 역할의 합인 '자아(Ego)'의 정체
- 모든 변화를 고요히 바라보는 내 안의 불변하는 관찰자, '참나(True Self)'
- '자아'와 '참나'를 구분할 때 얻게 되는 진정한 자유와 내면의 평온
대다수의 사람은 평생을 '나는 내 생각이고, 내 감정이며, 내가 가진 직업이나 역할이다'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자아(Ego)'입니다. 자아는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평가, 그리고 내가 연기하는 수많은 역할(부모, 자녀, 상사, 부하 등)의 총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어제의 슬펐던 내 감정은 오늘의 기쁜 감정으로 변합니다. 10년 전의 내 생각과 지금의 내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렇듯 끊임없이 변하는 생각, 감정, 역할이 어떻게 '진정한 나'일 수 있을까요?
자아는 마치 무대 위에서 시시각각 바뀌는 조명이나 연극 속 배역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그 배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본래의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변하는 자아 너머에 있는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요? 마음공부에서는 이를 '참나(True Self)' 또는 '본성(True Nature)'이라고 부릅니다. 참나는 생각, 감정, 오감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 모든 과정을 '고요히 바라보는 주체'입니다.
우리가 슬픔을 느낄 때, 그 슬픔을 알아차리는 고요한 '관찰자'가 내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관찰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고, 일어난 슬픔이라는 감정 그 자체를 '나'라고 착각합니다. 참나는 마치 거울과도 같습니다.
거울은 더러운 것이 비치든 아름다운 것이 비치든, 그 자체로 오염되거나 변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비출 뿐입니다. 내 안의 이 변하지 않는 고요한 '알아차림' 그 자체가 바로 우리의 본질입니다.
일상에서 '자아'와 '참나'를 구분하는 연습을 거듭할수록, 우리는 자아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파도에 덜 휩쓸리고 내면의 깊은 평온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 '감정의 파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하기: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나는 화가 난다"라고 말하는 대신, "내 안에 화라는 감정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라고 속으로 되뇝니다. 감정과 '나'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연습입니다.
둘째, '이 생각은 어디서 왔는가?' 질문하기: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생각에 휩쓸리지 말고, "이 생각은 내 안의 '참나'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기억이나 두려움에서 온 '자아'의 목소리인가?"를 가만히 물어봅니다. 대부분의 복잡한 생각은 자아의 목소리임을 알게 됩니다.
셋째, '지금 이 순간'의 순수한 알아차림에 머물기: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3번의 호흡과 함께 호흡하는 그 느낌, 주변의 소리, 내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복잡한 생각의 '자아'를 벗어나 고요한 '참나'의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저만해도 이런 내용을 안다 해도 순간적으로 알아차림 하기가 쉽지는 않은데요, 그래서 정말 꾸준히 공부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한듯 합니다.
마음공부는 '자아'를 없애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는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용한 도구(배역)입니다.
진정한 마음공부는 자아의 배역에 너무 몰입하여 스스로 고통받는 것을 멈추고, 내가 바로 그 배역을 연기하고 관찰하는 고요한 '참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내 안의 불변하는 본질을 발견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외부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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